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행정구역 개편/수도권/광역시 승격/수원광역시 (문단 편집) === 명칭 문제 === 통합된 자치단체의 명칭은 주로 통폐합된 지자체 중 하나의 이름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. 명칭을 결정짓는 요인으로는 역사성, 인구수, 경제력을 꼽을 수 있다. * 역사성, 인구수, 경제력이 모두 우위였던 경우 * [[창원시]]: 창원이란 이름부터가 의창+회원(마산의 옛 이름)으로 구 창원과 구 마산을 아우르는 이름이며, 실제로 마산은 일제가 분리하기 전까지는 창원과 별개의 행정구역이 아니었으며, 진해 역시 1955년 승격 전까지는 창원군 진해읍이었던 곳이다. 경제력에서도 창원은 한때 비수도권 재정자립도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고, 이때문에 [[https://m.segye.com/view/20091110004391|자율통합 여론조사]]에서도 마산이 창원보다 훨씬 더 높은 찬성률을 보일 정도였다. 보통 통합 논의에서 규모가 큰 쪽이 찬성, 아닌 쪽이 반대가 더 많은 것과는 대조되는 일이다. * [[청주시]]: 청원이란 이름은 청주에서 분리된 이후 구분을 위해 임의로 붙인 이름일 뿐 원래 같은 청주부였고, 통합 전에도 청주가 청원 인구의 4배 이상일 정도로 격차가 컸다. * [[충주시]]: 원래 충주군이었다가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한 이후 나머지 지역은 중원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. * 인구수와 경제력이 우위였던 경우 * [[부산광역시]]: 원래 동래도호부 부산면으로 동래에 속한 항구 일대에 불과했으나, 일제강점기 이후 동래에서 독립하고 진주로부터 경상남도청 이전, 6.25전쟁기 임시수도, 경부고속도로 등 온갖 수혜를 받아 동래를 완전히 흡수해버렸다. * [[포항시]]: 원래 영일군 포항면이었으나, 영일군에서 독립한 이후 [[포항제철]]의 건설로 크게 성장하여 영일군을 조금씩 잠식해가다가 1995년 완전히 통합되었다. * [[구미시]]: 원래 선산군 구미면이었으나, 경부선이 구미를 통과하면서 나날이 성장하게 되고 국가산단까지 조성되면서 완전히 처지가 역전, 선산은 구미의 [[선산읍|일개 읍]]으로나 남게 되었다. * [[군산시]]: 원래 옥구군이었으나, 옥구군에서 독립한 이후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한 항구로 개발하고, 광복 이후 국가산단의 조성으로 성장하여 옥구군을 통합해버렸고, 옥구는 군산의 [[옥구읍|일개 읍]]으로나 존재하고 있다. * 역사성만 우위였던 경우: 이런 경우 시내 지역은 원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. * [[아산시]]: 1914년 아산과 온양이 아산군으로 통폐합된 이후 군청을 옛 아산현 지역인 영인면에서 온양면으로 이전했다. 그러나 이름을 온양군으로 바꾸는 일은 없었고, 이후 온양읍이 온양시로 분리승격되었다. 1995년 아산이란 이름으로 통합이 결정될 때 아산군 출신 의원이 온양시 출신보다 2배 가까이 많았기 때문에 불합리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왔으며[[http://ionyang.com/default/index_view_page.php?part_idx=66&idx=17982|#]] 아산에서도 한때 [[https://www.chosun.com/site/data/html_dir/2008/06/11/2008061102017.html|아산온양시]]라는 이름으로 명칭 변경을 검토하기도 했다. 현재도 아산시내를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'온양온천'을 병기하는 경우가 많다. * [[문경시]]: 1949년 문경읍에 있었던 군청이 점촌읍으로 이전하고 1986년 점촌시로 독립했다. 1995년 상당한 논쟁 끝에 문경시가 되기는 했으나, 혼동 문제로 2004년 동 지역의 행정동 이름을 점촌1~5동으로 바꾸었다.[[https://www.kyongbuk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56389&sc_sub_section_code=S2N2|#]] 현재도 시내를 가리키는 이름은 '점촌'을 병기하여 구분하고 있다. * [[사천시]]: 1956년 사천군 삼천포읍과 남양면이 통합한 후 삼천포시로 독립했다. 보통 시군청 소재지가 분리독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쪽은 사천읍이 군청소재지였던 시절이었음에도 분리독립했다는 특이사항을 갖고 있다. 이때문에 양자 간 생활권이 많이 다르다는 문제가 있었고 통합이후 시청도 사천읍과 삼천포의 중간 지역이라는 어중간한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. * [[보령시]]: 1986년 대천읍이 대천시로 분리독립했다가 1995년 다시 통합되었다. 그러나 [[대천해수욕장]], [[대천역]] 등의 존재로 인해 여전히 대천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. 2016년 보령시에서 대천역과 대천IC의 명칭 변경을 [[http://www.news-story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31725|추진]]했으나 아직 변경은 없는 상태이다. 오산의 경우 원래 화성군 오산읍이었던 곳이고, 체급도 수원ㆍ화성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산광역시라는 이름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. 그렇다면 수원과 화성, 둘 중에 하나를 정해야 할 텐데 문제는 둘 중 누군가가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는 게 없다. 정확히 말하자면 수원 중심의 통합을 하기에는 화성이 너무 커버렸다. * 역사성: 수원시 측에서는 한때 같은 수원군이었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엄밀히 따지면 화성 서부 지역은 원래 남양군이었고 동부 지역은 지금의 수원과 함께 화성유수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.[* 화성은 성곽 뿐 아니라 고을의 이름이기도 했는데, 1793년 정조가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개칭한 것이다. 이 지역에서 정조가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화성이라는 이름의 역사성도 무시하기 어렵다.] 이때문에 수원과 화성의 뿌리는 다른데 일제가 수원군으로 강제로 통합시켰으며, 수화오 통합은 일제의 만행을 답습하는 행위라고 반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.[[http://www.ihsnews.com/9816|#1]][[http://www.ihsnews.com/9887|#2]][* 그러나 정조의 도시임을 표방하며 정조 관련 사업을 하는 화성시가 자신들의 뿌리에서 옛 수원을 빼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울 것이다. 또한 기사에서는 수원 일부지역과 남양이 합쳐진 현 화성시의 뿌리를 남양으로만 보고 있다. 기사에서 말하는 일제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는 화성시를 동서로 분할하여 동부 지역은 수원에 편입해야 한다.] * 인구수: 2001년 시 승격때만 해도 [[https://www.hani.co.kr/arti/area/capital/1084522.html|21만]]에 불과했던 화성의 인구는 경기도 시군 순서를 매번 바꿀 정도로 급속하게 성장 중이다.[[https://m.khan.co.kr/local/Gyeonggi/article/202304121123001|#]] 수원은 좁은 면적의 한계로 현 120만대의 인구를 더 불리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화성은 면적이 넓어 아직 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. * 경제력: 화성의 재정자립도는 경기도 1위인 반면 수원은 갈수록 추락하는 중이다.[[http://giview.co.kr/mobile/article.html?no=53263|#]] 이렇다보니 재정적 여유가 충분한 화성이 구태여 수원과의 통합에 목을 매달 이유가 없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